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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사 (칭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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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진사는 한국과 중국의 과거 제도에서 사용된 칭호로, 시대와 국가에 따라 그 의미가 다르다.

고려 시대에는 과거 시험인 진사과의 급제자를, 조선 시대에는 소과인 진사시 합격자를 진사라고 불렀다. 중국에서는 수나라부터 북송 시대까지 과거 제도의 한 과목이었으며, 왕안석의 개혁 이후에는 과거 급제자를 통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명·청 시대에는 전시에서 선발된 급제자를 진사급제, 진사출신, 동진사출신으로 나누어 불렀다. 진사는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얻었으며, 관직 진출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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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사 (칭호)
개요
종류과거 중국의 과거 제도에서 가장 높은 학위
의미들어간 선비
한글 표기진사
로마자 표기jinsa
명칭
중국어 간체进士
중국어 정체進士
병음jìnshì
웨이드-자일스chin⁴-shih⁴
광둥어zeon3 si6
예일jeun sih
광둥어 로마자 표기zeon3 si6
베트남어tiến sĩ
만주어dosikasi
일본어進士 (しんし) shinshi
역사
설명중국 제국 과거 시험 제도의 최고 학위
제도적 중요성관료를 선발하는 주요 방법
참고 문헌중국 제국 과거 시험 제도: 주석 달린 참고 문헌
관련 링크중국 학자 관료 -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관련 서적전제주의 전통과 중국 정치
이미지
명나라 관료 왕경의 진사 복장
명나라 관료 왕경의 진사 복장

2. 한국의 진사

고려 시대 진사는 과거 시험인 진사과의 급제자를 의미하며 관직에 임용되었으나, 조선 시대에는 소과(小科) 진사시 합격자를 뜻하는 의미로 격하되었다.[6] 조선에서 진사시 합격자의 직역은 '진사'였다.

2. 1. 고려의 진사

고려에서 진사는 한동안 과거 시험인 진사과의 급제자를 뜻하며 관리에 임용되었으나, 조선 시대에는 1단계 과거시험인 소과(小科) 진사시 합격자를 뜻하는 의미로 격하되었다.[6]

제술업(製述業)이 시험 과목이던 고려 시대의 시험인 진사과[7]는 고려의 문과(文科)에 해당하므로, 조선의 소과 진사시와는 구별되어야 한다.[7] 고려 무신란 이후로는 제술업 급제자로서 관리에 등용되지 못하는 사례가 늘어났으며, 고려 문한관(文翰官)은 무신정권이나 원나라의 압력이 있기 전에는 무신을 제외한 문신의 기능이 있어서 제술업 급제자에 의해 독점되다시피 하는 관직이었다.[8]

2. 2. 조선의 진사

조선 시대에 진사는 1단계 과거 시험인 소과(진사시) 합격자를 뜻하는 의미로 격하되었다.[6] 조선에서 소과 과거 시험인 진사시에 합격한 사람의 직역은 '진사'였다.

조선에서 진사와 생원(生員)의 관계는 법제적으로 우열이 없었으나, 조선 초기에는 진사시가 없고 생원시만 있어 생원이 진사보다 우대를 받았다.[7] 사림파 등장 이후 조선 후기로 내려오면서 경학(經學)보다 사장(詞章)을 중시하는 풍조에 따라 진사의 사회적 존경도는 대체로 생원보다 높아졌다.[7]

3. 중국의 진사

베이징시 동청구에 있는 공자묘는 1302년 테무르 칸(원나라 성종) 시대에 처음 건설되었으며, 중국에서 두 번째로 큰 사원이다. 이 사원에는 원, 명, 청나라 시대의 51,624명의 진사 학자들의 이름이 새겨진 198개의 돌 비석이 보관되어 있다.


중국에서 진사는 수나라에서 북송 중기까지 시행된 과거 제도의 여섯 과 중 하나였다. 왕안석의 개혁으로 진사과 외 다른 과들이 폐지된 후에는 과거 합격자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3. 1. 진사과

수나라에서 북송 중기에 있었던 과거 제도 여섯 과의 하나이다. 왕안석의 개혁으로 진사과 이외 폐지된 후 과거의 등제자(합격자)를 가리킨다.

수나라 초기에 과거가 시작되었지만, 605년에 진사과가 설치되었다. 수나라당나라 시대에는 진사과와 명경과로 시험이 나뉘어 있었다. 명경과는 유학 지식과 시무책만을 평가했지만, 진사과에서는 여기에 시부(詩賦)가 더해졌다. 진사과는 시험이 가장 어려웠고, 한 번에 뽑는 인원은 2~30명으로 명경과의 10분의 1이었기 때문에 가장 중시되었으며, 지위는 다른 과보다 높았다. "명경과는 30세에도 늙은이, 진사과는 50세에도 젊은이"라는 말은 진사과가 얼마나 난관이었는지를 보여준다.

  • '''진사 급제'''(進士及第): 궁정 시험에서 1등으로 졸업한 사람들로, 보통 상위 3명만이 이 칭호를 받았다.
  • '''장원'''(狀元): 전국적으로 1등을 한 진사.
  • '''방안'''(榜眼): 장원 바로 아래인 전국 2등을 한 진사.
  • '''탐화'''(探花): 전국 3등을 한 진사.
  • '''진사 출신'''(進士出身): 궁정 시험에서 2등으로 졸업한 사람들로, 탐화 바로 다음 순위이다.
  • '''동진사 출신'''(同進士出身): 궁정 시험에서 3등으로 졸업한 사람들.


3. 2. 왕안석의 개혁 이후

송나라 과거 제도는 초기에는 진사, 명경 등 여러 과가 있었으나, 왕안석의 개혁으로 명경과 등이 폐지되고 진사과 하나만 남게 되었다.[1] 원나라에서도 과거를 시작했을 때 진사과만 두었고, 명나라, 청나라도 이를 계승했다.[1] 따라서 과거 급제자를 진사라고 칭하게 되었다.[1]

명나라와 청나라에서는 전시에서 선발된 급제자를 삼갑으로 나누었다.[1] 일갑은 장원, 방안, 탐화 3명으로 '진사급제'라 칭하고, 이갑은 약간 명(청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40~50명)으로 '진사출신'이라 칭했으며, 삼갑(청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100~300명)은 '동진사출신'이라 칭했다.[1] 이들을 통틀어 진사라고 불렀다.[1]

3. 3. 명·청 시대의 진사

송나라의 과거 제도는 처음에는 진사, 명경과가 설치되어 있었지만, 왕안석의 개혁을 거쳐 여러 과가 폐지되고 진사과만 남게 되었다. 원나라에서도 과거가 시작되었을 때 진사과만 남았으며, 명나라, 청나라에서도 그것을 이어받았다. 따라서 과거 급제자를 진사라고 칭하게 되었다.

명나라와 청나라에서는 전시에서 선발된 급제자를 삼갑으로 나누었다. 1갑은 장원, 방안, 탐화 3명을 "진사 급제"라고 칭하고, 2갑은 약간 명(청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40~50명)을 "진사 출신"이라고 칭하고, 3갑(청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100~300명)은 "동진사 출신"이라고 칭했다. 그들 모두를 진사라고 불렀다.

  • '''진사 급제'''(進士及第): 궁정 시험에서 1등으로 졸업한 사람들로, 보통 상위 3명만이 이 칭호를 받았다.
  • * '''장원'''(狀元): 전국적으로 1등을 한 진사.
  • * '''방안'''(榜眼): 장원 바로 아래인 전국 2등을 한 진사.
  • * '''탐화'''(探花): 전국 3등을 한 진사.
  • '''진사 출신'''(進士出身): 궁정 시험에서 2등으로 졸업한 사람들로, 탐화 바로 다음 순위이다.
  • '''동진사 출신'''(同進士出身): 궁정 시험에서 3등으로 졸업한 사람들.


4. 진사의 지위

거자가 회시에 합격하면 진사가 되었다. 이들은 최고의 사회적 지위와 명성을 누리며 전체 신사(紳士)들에 대한 영향력을 발휘하던 최상층 신사였다. 진사 학위를 취득하면 직접 관계에 진출할 수 있었고,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거의 즉시 관리로 임명되었다.[1] 회시는 여러 시험으로 구성되었는데, 회시는 그중 첫 번째 시험을 의미했다. 이 시험에 합격한 사람들은 공사(貢士)라고 불렸다. 그 다음 시험인 전시는 1개월 후에 실시되었는데, 회시에 합격한 사람들의 최종 성적을 결정하는 시험이었다. 이 전시를 치른 사람들을 진사라고 불렀지만, 공사로서 진사가 되지 못한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공사는 일시적으로, 회시와 전시 사이의 짧은 기간 동안의 호칭일 뿐이었다.[1]

문과의 회시에서 좋은 성적으로 급제한 자들은 한림원에 보내졌고, 이곳에서 각 성(省)의 학정(學正)으로 파견되거나 중앙 및 지방의 고위 관리로 임명되었다. 회시는 3년에 한 번씩(문과의 경우 축(丑)·진(辰)·미(未)·술(戌) 등의 해 3월 9일, 12일, 15일 세 차례에 걸쳐 경사(京師)에서 실시되었다. 무과의 회시는 같은 해 9월 5일, 15일에 실시되었다. 급제자들은 성적에 따라 3등급으로 나뉘었고, 그들의 나이와 성적에 따라 관직이 결정되었다. 대체로 1갑으로 평가받은 자들은 한림원의 수찬(修撰)이나 편찬(編纂)에 임명되었고, 나머지는 한림원 서길사(庶吉士), 각 부(部) 혹은 내각의 당주사(堂主事), 지방의 지현(知縣)으로 임명되었다.[1]

궁정 시험에서 1등으로 졸업한 사람들은 '''진사 급제'''(進士及第)라고 불렸으며, 보통 상위 3명만이 이 칭호를 받았다.[1]


  • '''장원(狀元)''': 전국에서 1등을 한 진사.
  • '''방안(榜眼)''': 장원 바로 아래인 전국 2등을 한 진사.
  • '''탐화(探花)''': 전국 3등을 한 진사.


궁정 시험에서 2등으로 졸업한 사람들은 '''진사 출신'''(進士出身)이라고 불렸으며, 탐화 바로 다음 순위였다. 궁정 시험에서 3등으로 졸업한 사람들은 '''동진사 출신'''(同進士出身)이라고 불렸다.[1]

참조

[1] 서적 The Chinese Imperial Examination System: An Annotated Bibliography
[2] 웹사이트 Scholar-Officials of China {{!}} Essay {{!}}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 Heilbrunn Timeline of Art History https://www.metmuseu[...] 2023-10-06
[3] 서적 Autocratic Tradition and Chinese Politics
[4] 문서 History of Song (Yuan dynasty)
[5] 문서 Ho 1962
[6] 웹인용 드라마 ‘녹두꽃’ 황진사는 과거 급제자가 아니다 https://weekly.donga[...] 주간동아 2019-05-17
[7] 웹인용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진사(進士) http://encykorea.aks[...] 한국학중앙연구원
[8] 웹인용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제술업(製述業) http://encykorea.aks[...]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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